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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무형문화재 발탈, 역사와 전승 과정을 통해 본 우리 전통 가면극의 흐름
    국가문화재 2025. 8. 13. 08:00

     

    발탈은 오늘날 거의 공연되지 않는 희귀한 전통 가면극이지만 그 역사와 전승 과정 속에는 조선시대 서민문화의 생동감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발탈은 단순한 연희가 아니라, 권력과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 그리고 웃음을 매개로 한 공동체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장터나 마을 축제에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었으며 배우와 관객이 함께 웃고 대화하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발탈의 역사는 곧 조선 후기 도시문화와 민속예술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문화적 자산입니다.

    이 글에서는 발탈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전승되었는지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차근히 살펴보겠습니다.

     

    발탈 전통 가면극

    발탈의 기원

    발탈의 기원은 조선 후기 서울과 경기 지역의 민속놀이와 탈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도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가면극이 있었지만 발탈은 기존 탈춤과는 다른 특징을 발전시켰습니다.

    발탈이라는 명칭에는 발로 추는 춤이라는 의미가 담겼다는 설과, 가면극을 강조한 의미가 있다는 설이 함께 존재합니다.
    조선 후기 서울은 상업과 문화가 번성하며 각종 연희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한양 장터에서는 풍물패, 인형극, 줄타기 등 다양한 공연이 열렸는데 발탈도 이 속에서 서민의 웃음을 책임지는 연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발탈은 양반과 서민,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를 아우르는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사회를 비틀어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했습니다.

     

    조선시대 발탈의 공연 환경

    발탈은 주로 장날이나 큰 마을 행사에서 공연되었습니다. 장터 한쪽에 마련된 임시 무대나 빈 공터가 공연장이 되었고 배우들은 화려한 무대 장치 없이도 가면과 몸짓, 대사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배우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공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발탈의 대사에는 권력층을 비판하거나 부패를 꼬집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이 일상에서 말하지 못하는 불만과 풍자를 발탈 무대에서 대신 들을 수 있었기에 관객은 웃음과 함께 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발탈의 구성과 대본 전승

    발탈의 공연은 보통 2막 또는 3막으로 나뉘었으며 각 막은 독립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졌습니다. 대본은 구체적인 문서 형태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연희자들의 구전(口傳)을 통해 전승되었습니다. 배우들은 일정한 틀 안에서 즉흥적으로 대사를 주고받았고, 관객의 반응에 따라 내용을 변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구연 방식은 발탈을 더욱 살아있는 공연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공연에서만 등장하는 유행어, 특정 관객을 향한 즉석 농담 등이 발탈의 매력이었고 이를 통해 발탈은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화하며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발탈 가면과 장인의 역할

    발탈의 전승 과정에서 가면 장인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가면은 발탈 공연의 핵심 도구로 배우의 표정을 대신 전달했습니다. 가면 제작에는 나무를 고르고 깎는 섬세한 공정이 필요했으며, 장인은 등장인물의 성격과 사회적 위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권력자 역할의 가면은 눈매가 날카롭고 볼이 부풀려진 형태로 어리숙한 인물의 가면은 둥글고 단순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장인들은 가면뿐 아니라 소품과 의상 제작에도 관여하여 공연 전체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발탈의 전승 경로

    발탈은 초기에는 전문 연희패와 장인에 의해 전승되었습니다. 연희패는 특정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했고 젊은 단원들은 선배로부터 동작과 대사를 배웠습니다. 전승 과정은 철저히 사제 관계를 기반으로 했으며 입문자는 오랜 시간 허드렛일을 하며 공연 기법을 익혔습니다.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기까지 발탈은 한양과 경기 남부 지역에서 꾸준히 공연되었지만 20세기 초반부터 점차 공연 횟수가 줄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전통문화를 억압하는 정책과 도시화로 인해 발탈 무대가 사라졌고 많은 연희자들이 생계를 위해 공연을 포기했습니다.

     

    발탈의 단절과 위기

    발탈 전승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거의 단절 위기에 놓였습니다. 서구식 연극과 영화가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면서 장터 공연과 민속연희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발탈을 전문으로 하는 연희패는 사라졌고, 가면과 대본, 공연 기법은 일부 장인과 연구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발탈의 기록은 민속학자와 문화재 조사단에 의해 일부 보존되었지만 실제 무대 위의 발탈은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발탈의 복원과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1960~70년대 들어 정부와 문화예술계는 전통 공연예술의 복원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발탈은 학술 조사와 구술 채록을 거쳐 공연 형태가 재구성되었고 1980년대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아 있는 가면과 소품, 그리고 노년 연희자들의 증언이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복원 공연은 단순히 옛 것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사회적 맥락을 살려 오늘날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또한 발탈을 보존·전승하는 단체가 생겨나 연습과 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기법을 전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발탈 전승 활동

    오늘날 발탈은 축제, 전통문화 행사, 학교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승자들은 가면 제작, 공연 기법, 대사 구성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며 청소년들이 직접 발탈을 체험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발탈 공연을 관광 콘텐츠로 활용하여 전통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발탈의 해학과 풍자는 현대 연극, 방송 코미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발탈이 단순한 옛 공연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예술임을 보여줍니다.

     

    마무리

    발탈의 역사와 전승 과정은 우리 전통문화의 힘과 유연성을 증명합니다.

    발탈은 한때 단절 위기에 처했지만 장인과 연구자, 전승자들의 노력으로 무대 위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속에는 웃음으로 세상을 바라본 조선 사람들의 시선과 시대를 초월하는 풍자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발탈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옛 공연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과 창조성을 미래로 이어주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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