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와 추억의 물건

형광펜으로 칠한 필기, 교실 속 작은 자부심의 기록

happy-lolo 2025. 10. 8. 09:10

누구에게나 학창 시절의 책상 위에는 필기를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연필, 볼펜, 자, 지우개 같은 기본 문구는 말할 것도 없고, 시험 준비가 다가올수록 형광펜은 반드시 등장하는 학습의 상징이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색상으로 교과서와 노트를 수놓던 형광펜은 단순히 강조 표시를 넘어서 교실 속 학생들의 학습 태도와 자부심을 보여주는 작은 도구였다. 시험 전날 책장을 넘기며 형광펜으로 가득 칠해진 부분을 보면 노력의 흔적과 함께 은근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본문에서는 형광펜이 왜 학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졌는지, 그리고 형광펜 필기가 어떻게 교실 속 자부심과 연결되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형광펜 필기의 자부심

 

 

 

형광펜의 등장은 공부 방식의 전환점

형광펜이 본격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자리 잡은 것은 1990년대 이후였다. 이전에는 밑줄을 긋거나 색연필을 활용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형광펜은 훨씬 강렬하고 선명한 시각적 효과를 주었다. 책상 위에 놓인 형광펜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학생들은 교과서의 핵심 문장을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스스로 학습의 중심을 정리했다. 이는 단순히 색을 입히는 행위가 아니라 머릿속에 내용을 각인시키는 일종의 학습 의식이었다.

 

 

교실 속 형광펜 색상 선택의 의미

형광펜의 색상은 학생 개개인의 성향과 학습 스타일을 드러냈다.

노란색은 가장 기본적인 색으로, 눈에 자극이 적어 교과서 전체를 칠하는 데 자주 쓰였다.

주황색은 강렬한 강조 효과를 주어 중요한 키워드 표시용으로 인기가 높았다.

분홍색은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특히 국어나 영어처럼 암기할 분량이 많은 과목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초록색과 파란색은 상대적으로 덜 흔했지만, 특정 파트를 구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학생은 자신이 어떤 색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필기 노트의 인상이 크게 달라졌다. 깔끔하고 정돈된 색 배치를 보여주는 학생은 교실 속에서 은근히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시험 준비와 형광펜의 자부심

형광펜으로 가득 채워진 교과서와 노트는 단순한 학습 기록을 넘어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다. 시험이 다가오면 학생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다는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줄 때도 형광펜으로 정리된 필기는 신뢰감을 주었다.

특히 시험 직전 복도에서 책을 펼쳐보면 색색의 형광펜으로 표시된 줄들이 남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학생은 필기를 깔끔히 정리해둔 덕분에 시험이 끝난 뒤에도 노트를 동급생에게 판매하거나 빌려주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형광펜은 학습 도구를 넘어 교실 속 작은 사회적 자산이었던 셈이다.

 

 

형광펜이 만들어낸 심리적 효과

형광펜은 공부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동시에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 색이 칠해진 부분은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에 집중력을 높여주었고, 스스로 이 부분은 중요하다고 표시하면서 자기 암기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력의 가시화였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흔적이 남지 않으면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지만 형광펜은 공부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남겼다. 책장이 점점 형광펜으로 물들어갈수록 학생은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고, 그 성취감이 또 다른 학습 동기를 만들었다.

 

 

교실 속 형광펜 문화의 이면

형광펜 사용에는 은근한 경쟁과 서열도 존재했다. 어떤 학생은 형광펜을 과도하게 사용해 교과서 전체가 거의 형광빛으로 물들었고, 이는 오히려 무조건 다 외우려 한다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반대로 색의 배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학생은 정리 능력과 학습 태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즉, 형광펜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교실 속에서 공부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은근한 자부심과 미묘한 경쟁이 공존했다.

 

 

오늘날 사라져가는 형광펜의 상징성

디지털 학습 도구가 보편화되면서 종이 교재에 형광펜을 칠하는 모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태블릿이나 노트북에서 디지털 형광펜 기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종이에 직접 칠하며 느꼈던 성취감과 자부심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조금 희미하다.

형광펜은 단순히 공부를 돕는 도구가 아니라 학생이 노력한 흔적을 직접 남기고 그 흔적을 통해 스스로 동기를 얻는 과정의 일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형광펜이 주던 감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특별하게 기억된다.

 

 

결론

형광펜은 교실 속에서 단순한 필기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 물건이었다. 중요한 부분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기능을 넘어서 공부에 대한 태도와 자부심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형광펜은 곧 노력의 기록이었고, 그 기록은 교실 속 작은 자부심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디지털 기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형광펜으로 물든 교과서와 노트는 여전히 학창 시절의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