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언니의 여름,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
햇살이 눈부시던 여름방학의 어느 날,
학교 종이 멈추자마자 우리는 문방구로 달려갔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스티커를 고르고, 책가방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숙제 언제 하지…” 하며 한숨을 쉬던 그 시절.
그런 우리에게 문방구 언니는 여름방학의 영웅 같았습니다.
언제나 카운터 너머에서 웃고 있던 그 언니는, 숙제에 막힌 우리를 도와주던 작은 선생님이자 따뜻한 친구였습니다.

문방구 언니의 하루는 언제나 분주했다
문방구 안은 여름에도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선풍기 하나가 덜컥거리며 돌아가고, 아이스크림 냉동고 위에는 분필가루가 살짝 쌓여 있었습니다.
언니는 늘 분주했습니다.
아이들이 계산을 밀려오면 덤덤하게 50원짜리를 세고,
“이거 두 개면 100원이지?” 하며 웃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거 숙제예요…” 하며
연필꽂이 너머로 문제집을 내밀면, 언니는 잠시 일을 멈추고 천천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여기에 밑줄 긋고, 다음 줄엔 답을 써봐.”
그 목소리는 교과서보다 친절했고, 어린 마음엔 그 말 한마디가 마법처럼 들렸습니다.
여름방학 숙제의 비밀 아지트
문방구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숙제와 상상의 놀이터였습니다.
칠판용 분필을 사러 왔다가 도화지를 한 장 더 집어 들고, 크레파스 대신 스티커를 붙이며 미술 숙제를 했습니다.
책상 위에는 색색의 색연필과 글리터펜 그리고 우리가 몰래 써놓은 여름일기 몇 줄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언니는 그런 우리를 보고 “여기서 해도 돼.” 하며 자리 한켠을 내줬습니다.
문방구 구석의 작은 의자 하나가 그때는 우리 세상의 도서관이자 작업실이었습니다.
언니의 도움으로 완성된 여름의 작품들
그 시절 숙제 중 가장 어려운 건 바로 과학 탐구 보고서와 식물 일기였습니다.
해바라기 씨를 심었는데 싹이 안 나면 어쩌나 걱정하던 우리에게 언니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싹이 안 났으면, 싹이 안 난 이유를 쓰면 돼. 그것도 실험이야.”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숙제를 완벽히 끝내지 못해도 언니의 말 한마디 덕분에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여름의 숙제들은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했습니다.
언니가 붙여준 반짝이 스티커 하나 그게 우리의 점수였고 상장이었습니다.
문방구 언니의 정체 — 어쩌면 우리보다 조금 먼저 자란 아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는 아마 고등학생쯤 되었을 겁니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로 문방구를 지키던 우리보다 몇 해 먼저 세상을 배운 누나 같은 존재.
하지만 어린 우리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어른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언니는 공부를 잘했고, 글씨가 예뻤고, 항상 손톱 끝에 반짝이는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습니다. 그 작은 손으로 숙제의 오답을 지워주던 그 장면은 아직도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문제를 풀어준 사람이 아니라 여름방학의 상징 같은 존재였습니다.
숙제가 끝난 날, 그리고 마지막 인사
8월 말이 되면 문방구에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모두가 숙제를 마무리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날도 언니는 한 아이의 일기를 도와주며 미소 지었습니다.
“이제 진짜 다 했네. 잘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했습니다. 그 여름이 끝난다는 아쉬움이 밀려왔고, 문방구 문을 나서며 “내년에 또 올게요!”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다음 여름, 그 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문방구는 여전히 같았지만 어딘가 한켠이 비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 문방구 언니를 떠올리며
이제는 문방구도, 그 언니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름의 냄새, 숙제의 종이 냄새 그리고 언니의 다정한 목소리는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숙제를 도와준 사람이 아니라 어린 날의 우리를 다정하게 응원해준 첫 어른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문방구 언니가 되고 싶습니다.
조용히 미소 짓고, 누군가의 여름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말입니다.
마무리 — 그 여름, 문방구 언니의 웃음은 아직도 빛난다
문방구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의 온기, 세대의 연결, 작은 배움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여름방학 숙제를 도와주던 문방구 언니는 우리의 어린 시절 속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미소 하나,
그게 우리가 지금까지도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