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쫀드기, 그 달콤했던 문방구의 시간들
학교 앞 문방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늘 그곳의 냄새였다.
종이 냄새, 플라스틱 냄새, 그리고 그 사이를 스치던 쫀드기의 달콤한 향기.
요즘 세대에게는 생소할지 몰라도 우리 세대에게 쫀드기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추억 그 자체였다.

쫀드기의 시작, 100원의 마법
쫀드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전국 문방구에서 가장 인기 있던 간식 중 하나였다.
가격은 단돈 100원.
당시엔 100원이면 작은 행복 하나를 살 수 있었다.
하얀 종이에 감싸진 길쭉한 쫀드기를 손으로 살짝 비틀면 그 특유의 달콤한 향이 퍼졌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문방구 앞에 모여
“누가 더 길게 늘리나” 내기하던 그 장면,
지금 생각하면 사소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었다.
쫀드기의 역사와 변화
쫀드기의 정확한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국내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은 분식 문화가 활발하게 퍼지던 시기였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꾀돌이, 빠다코코낫, 뽀빠이 과자, 쫀드기 같은 저가 간식 4대천왕이 자리 잡았다.
쫀드기는 단순한 젤리류가 아니라, 밀가루와 물엿을 섞어 졸여 만든 전통식 캔디였다.
그래서 달콤하면서도 약간의 탄력감이 있었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초창기엔 납작하게 눌러 만든 쫀드기, 막대형 쫀드기, 심지어 색깔이 들어간 무지개 쫀드기까지 다양했다.
90년대 후반 들어 문방구가 하나둘 사라지면서 쫀드기도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편의점 시대가 열리며 아이들은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간식을 찾았고, 쫀드기의 단순함은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쫀드기가 주던 감정, 공유의 추억
쫀드기는 나눠먹는 간식이었다. 혼자 먹기보단 친구에게 “한 입만!” 하며 나눠먹는 게 당연했다.
쫀드기를 반으로 나누던 그 순간, 비닐을 잡은 손끝의 끈적임 속에 우정의 온기가 있었다.
쫀드기는 저렴한 간식이었지만, 그 한 줄에는 아이들의 소통과 정(情)이 녹아 있었다.
서로의 입가에 묻은 쫀드기를 보며 깔깔거리던 웃음, 그 웃음이 바로 어린 시절의 행복이었다.
쫀드기의 인기 비결
- 저렴한 가격 – 100원이면 살 수 있는 행복.
- 씹는 재미 – 늘리고, 비틀고, 나눠먹는 손맛.
- 단순한 재료의 깊은 맛 – 물엿과 밀가루, 설탕이 만든 단맛의 균형.
- 문방구의 감성 –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을 채워주는 추억의 장소.
이 모든 요소가 모여 쫀드기를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추억의 매개체로 만들어주었다.
문방구와 함께 사라진 세대의 상징
문방구의 문이 닫히고 우리의 어린 시절도 그 안에 함께 잠들었다.
쫀드기는 단순히 팔리지 않아서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의 여유와 느림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요즘엔 레트로 붐이 일면서 추억의 쫀드기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문방구 쫀드기 세트를 검색하면 그때 그 맛을 재현한 제품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 맛을 그대로 느끼기엔 뭔가 부족하다.
아마도 그 시절의 공기, 친구의 웃음, 문방구의 소리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쫀드기의 향기를 다시 느끼다
가끔 쫀드기 한 줄을 사서 천천히 씹어본다. 그 끈적한 달콤함이 혀끝을 감싸면 그때의 오후가 떠오른다.
책가방을 메고 달리던 골목길, 문방구 앞에서 고무줄놀이하던 친구들 그리고 손에 꼭 쥔 100원의 무게.
그 100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순수했던 시절의 상징이었다.
쫀드기의 맛은 단지 단맛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그리움의 맛이었다.
마무리하며
쫀드기는 사라졌지만 그 시절의 온기와 감정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쫀드기처럼 천천히 녹아드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 번에 마트나 온라인에서 쫀드기를 보게 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하나쯤 사보자.
포장을 뜯고 한 입 베어 물면 당신의 마음속에서도 문방구의 종소리가 다시 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