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껌·별사탕, 사라진 단맛 속에 담긴 문방구의 기억
학교 앞 문방구를 떠올리면 먼저 코끝에 스치는 건 달콤한 향기였다.
플라스틱 통 속에 가득 담긴 사탕, 투명 튜브에 든 아폴로, 그리고 껌 한 통에 담긴 친구들의 웃음.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유년기를 반짝이게 했던 작은 단맛의 추억이었다.

100원의 행복, 아폴로의 전성시대
지금 아이들에게 아폴로라고 말하면 우주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아폴로는 빨대 모양의 알록달록한 젤리 간식이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색으로 줄지어 꽂혀 있던 그 아폴로를 손에 쥐면 왠지 모를 설렘이 올라왔다.
입에 넣고 살짝 물면 새콤달콤한 젤리가 올라오고, 하나 먹고 나면 또 하나 끝없이 이어지는 단맛의 유혹.
그 작은 튜브 안에는 단순한 간식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문방구 앞의 자유, 친구들과의 웃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여유.
아폴로는 1970~80년대 문방구 간식의 상징이었다. 색소가 진하고 손에 끈적거렸지만, 그마저도 추억이 된다.
지금 생각하면 건강에는 안 좋았을지 몰라도 마음에는 영양제 같은 존재였다.
껌 – 친구와 나누던 달콤한 약속
문방구의 또 다른 단골 주인공은 껌이었다.
롯데 후라보노, 자일리톨이 나오기 전 풍선껌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의 중심이었다. 100원을 내면 색색의 껌이 5개 들어있던 종이 포장이 건네졌다. 그 껌을 한입에 세 개쯤 넣고 풍선을 불던 그 순간 입안 가득한 단맛과 함께 세상도 잠시 멈춘 듯했다.
그 시절의 껌은 단순히 씹는 간식이 아니었다.
누가 더 크게 불 수 있나 하는 경쟁의 도구였고, 시험이 끝난 날엔 오늘은 세 개 씹자 하며 작게 기뻐하던 보상이었다.
요즘 껌은 심심할 때 씹는 무미한 습관의 일부지만 그때의 껌은 친구와의 추억을 공유하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별사탕 – 어린 시절의 반짝이던 마음
별사탕을 손에 쥐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가.
작은 별 모양의 설탕 알갱이가 손바닥 위에서 반짝일 때, 아이들의 눈빛도 함께 빛났다.
별사탕은 단순한 사탕이 아니라 행복의 모양이었다. 하얀 종이컵에 담긴 별사탕을 사서 친구들과 반씩 나눠 먹으며
“이건 행운의 별이야.”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졌던 시절이었다.
별사탕은 일본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며 희망과 추억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문방구 앞 유리병 속에 담겨 반짝이던 그 별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꺼지지 않는 빛으로 남아 있다.
사라진 단맛, 남겨진 기억
이제 문방구는 거의 사라졌고 편의점 진열대에는 포장지 화려한 수입과자들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때의 온기가 없다.
아폴로의 달콤함, 껌의 풍선, 별사탕의 반짝임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와 정서의 향기였다.
손으로 하나하나 고르던 간식, 100원을 쥐고 어떤 걸 살지 고민하던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따뜻했다.
사라진 건 단맛이 아니라, 그 단맛을 함께 나누던 마음의 여유였을지도 모른다.
다시 떠올리는 문방구의 시간
가끔 SNS에서 추억의 문방구 간식 세트를 보게 된다. 플라스틱 포장 속에 들어 있는 아폴로, 뽀빠이 과자, 별사탕… 그걸 보면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시절, 우리는 단순히 과자를 사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행복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문방구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놀이터이자 꿈의 창문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문방구를 보여주고 싶다. 100원짜리 쫀드기와 아폴로를 쥐고 친구들과 깔깔 웃던 그때의 세상.
그 세상은 작았지만 행복만큼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마무리하며
아폴로, 껌, 별사탕. 이 세 단어만으로도 입 안이 달콤해진다. 그 시절의 간식은 단순한 당분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첫 번째 기억의 향기였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어쩌면 그 단맛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때의 나, 그때의 친구, 그때의 세상을 조용히 다시 만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별사탕 한 줌, 아폴로 한 줄, 껌 한 조각을 꺼내어 그 시절의 나에게 인사해보자.
“잘 지냈니? 그 시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