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은 왜 7번을 칠해야 할까? – 전통 속 깊이 숨겨진 이유
한국의 전통 공예 기술 중 하나인 옻칠은 단순히 나무 표면에 칠을 입히는 작업이 아닙니다.
옻칠은 자연이 만든 재료를 인간의 기술로 정제하고 수차례의 반복된 손질과 기다림을 통해 하나의 예술로 완성되는 깊은 과정입니다. 특히 옻칠은 최소 7번 이상 칠해야 진짜다라는 말은 단순한 장인의 고집이 아닙니다. 이 숫자에는 전통 기술의 논리, 재료의 성질, 그리고 인간의 인내심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왜 하필 7번일까요? 3번이나 5번도 아닌 이 숫자에 담긴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전통 옻칠 기술에서 반복되는 7회 칠의 원칙에 대한 문화적, 과학적, 그리고 예술적 이유를 상세하게 풀어봅니다.
옻칠의 기본 개념부터 이해합시다.
먼저 옻칠이 무엇인지부터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옻칠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생칠)을 정제한 뒤, 나무·도자기·금속 등의 표면에 칠해 보호성과 심미성을 부여하는 공예 기술입니다. 이 수액은 천연수지로 건조되면 매우 단단하고 광택이 나며 내습성과 내열성이 뛰어납니다.
옻칠은 보통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초벌 손질: 나무 표면을 곱게 다듬고, 틈을 메움
초벌 칠: 정제된 생칠을 얇게 바름
건조: 고온 다습한 장소에서 수 시간 ~ 수일 자연 건조
연마: 건조된 표면을 고운 사포로 곱게 다듬음
중도 칠: 두 번째 옻칠 → 건조 → 연마
상도 칠: 마무리 광택을 위한 반복 칠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단 한 번 칠하고 끝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표면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 5~7회 이상 칠하고 연마하고 건조하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옻칠을 7번 칠하는 이유 – 단순 미신이 아닙니다.
내구성을 위한 물리적 이유
옻칠은 단단하지만 얇게 한 겹만 칠하면 쉽게 벗겨지거나 금이 갑니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덧칠해야만 층이 생기고 표면 전체가 고르게 코팅됩니다.
칠 횟수가 늘수록 방수성, 방습성, 충격 저항성이 증가합니다.
실제 실험:
동일한 나무 접시에 1번, 3번, 7번 옻칠을 한 후 습도 90% 환경에 1주일 보관하면
1회 옻칠 제품은 표면이 갈라지고,
3회 제품은 반점 발생,
7회 제품은 변형 없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칠마다 목적이 다릅니다
옻칠 7회는 단순 반복이 아니라 단계별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칠순서 명칭 주요 역할
1회차 초벌칠 목재 보존, 표면 흡수율 조절
2회차 균일칠 요철 메우기, 기본 색상 입히기
3~4회차 중도칠 두께 형성, 방수 기능 확보
5회차 연마 전 칠 고운 표면 만들기
6회차 색광칠 색상 균일화, 미세결 보완
7회차 상도칠 최종 광택, 보호막 형성
즉, 각각의 칠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7회라는 숫자는 기술적으로 완성도를 보장하는 최소 기준입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적인 칠 간격
옻칠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건조입니다.
인위적으로 열을 가하거나 빠르게 마르게 하지 않고, 고온·다습한 밀폐공간(칠방이라 부름)에서 하루 이상 자연 건조를 기다립니다.
1회 칠 → 24~48시간 건조 → 연마
이 과정을 7회 반복하려면 최소 2주 이상 소요됩니다.
이렇듯 전통 옻칠에서는 칠은 빨리 마를수록 실패다. 느릴수록 살아남는다. 라는 철학이 존재합니다.
이는 단순 작업 공정이 아니라, 시간과 기다림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성립된 방식입니다.
수치 7에 담긴 상징성도 한몫합니다
우리 전통에서 7은 완성과 정리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불교나 유교에서도 7은 의미 있는 구조로 자주 등장하며, 옻칠에서도 기능적 의미 외에 정신적 완성의 단계로 간주합니다.
실제로 전통 장인들은 7회를 마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제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숙련, 집중, 정성, 인내, 자연과 조화, 마무리 등
옻칠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 담아낸 수치가 바로 7입니다.
현대에서도 7회 원칙은 유효할까요?
디지털 시대인 지금도 많은 전통 장인과 공방은 여전히 7회 칠을 고수합니다.
다만 현대 기술과 결합해 건조 시간을 줄이거나 도장 기법과 병행해 5회 전후로 타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 고급 브랜드와 협업할 때나 전시용 옻칠 작품의 경우, 대부분 7회 이상 전통 기법을 요구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가장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결과물은 결국 전통 방식에서 나옵니다.
마무리 – 7번 칠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옻칠을 7번 칠하는 것은 단순히 튼튼하고 예쁘게 만들기 위한 기술적 방식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자연에 대한 존중, 기다림의 미학, 그리고 손끝으로 역사를 이어가는 인간의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빠르고 편한 것이 우선되는 시대에 왜 7번이나 칠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오히려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