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해녀: 바다를 품은 삶의 지혜와 유산
제주의 바다는 매일같이 사람과 자연이 맞닿는 생명의 현장입니다. 이 바다에서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맨몸으로 깊은 수심을 견디며 수산물을 채취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해녀입니다. 해녀는 단순한 직업군이 아닌 오랜 세월 한국 해양문화의 중심을 지켜온 여성 중심의 공동체이자 수중 채취문화의 상징입니다. 그 독특한 생업방식과 공동체 의식은 오랜 시간 전통으로 계승되어 왔으며 마침내 2017년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녀 문화의 기원, 삶의 방식, 공동체 정신,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해녀 문화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해녀 문화의 기원과 역사
해녀의 기원은 정확히 기록된 문헌은 없지만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등 조선시대 기록에서는 이미 제주 지역에서 여성이 물질(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활동)을 한다는 내용이 발견됩니다. 당시에도 해녀는 어획물의 판매를 통해 세금을 내거나 가계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요한 경제 주체로 기능하였습니다.
특히 해녀 문화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 제주도와 울릉도, 전라남도 일부 섬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전복, 소라, 해삼, 미역 등을 채취하는 기술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일종의 전문적 수중 기술로 발전하였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오키나와, 큐슈 지역 등으로 원정 물질을 떠나기도 하며 해녀의 영역이 넓어졌지만 동시에 혹독한 착취와 생명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해녀의 생업 방식과 일상
해녀는 장비 없이 호흡만으로 깊은 바닷속에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합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소잠수라 불리는 방식을 사용하며 깊이에 따라 해녀 등급이 나뉩니다. 상군은 10m 이상의 깊은 바다까지 잠수할 수 있는 해녀이고, 중군과 하군은 점차 얕은 곳에서 활동하는 해녀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보통 하루 두 차례, 조수 간만의 차이를 고려해 물질을 나섭니다. 평균적으로 한 번 잠수하면 1~2분을 물속에서 견디며 하루 평균 3시간에서 5시간 정도의 물질을 수행합니다. 바닷속에서는 오로지 숨 하나에 의지해 움직여야 하므로 강한 체력과 호흡 조절 능력, 그리고 오랜 경험이 필수입니다.
해녀는 각종 해산물을 채취하지만 그 대상은 계절과 환경, 해역에 따라 달라집니다. 봄에는 미역과 톳을, 여름에는 전복과 소라를, 가을에는 해삼과 문어를 주로 채취합니다. 그들의 생업은 단순히 해산물 수확에 그치지 않고 바다 생태계와의 공존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어업 방식을 따릅니다.
공동체 의식과 해녀 문화의 사회적 가치
해녀는 단독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한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활동합니다. 해녀회 혹은 해녀조직은 마을별로 구성되며, 해역을 나누어 사용하는 규칙이 존재합니다. 또한 채취량을 제한하고, 어린 해산물은 포획하지 않으며, 산란기에는 물질을 자제하는 등 해양 자원을 보호하는 규범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더불어 해녀 문화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 확대에 있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과거 농업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해녀는 예외였습니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공동체 내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여성의 자율성과 리더십이 강하게 드러나는 직군입니다.
해녀의 공동체 정신은 물질뿐 아니라 삶에서도 구현됩니다. 상호 부조, 교육, 후계자 양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 체계를 이루며 이를 통해 수백 년간 그들의 문화를 보존해 왔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지정과 그 의미
2017년, 문화재청은 해녀 문화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직업군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구현한 문화유산으로서 해녀의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해녀 문화는 그 전통성과 기술성, 공동체성, 생태 친화성 등을 모두 포함하여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을 대표할 수 있는 무형 유산입니다. 특히 해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해녀 문화와 지속 가능성
하지만 오늘날 해녀 문화는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2만 명에 이르던 해녀 수는 현재 약 3천 명 수준으로 감소하였고 그 중 80% 이상이 60세 이상 고령자입니다. 젊은 세대의 진입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이는 생계로서의 수익성 저하, 노동 강도, 안전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는 다양한 보존 및 전승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해녀 박물관 건립, 해녀학교 운영, 해녀 체험 프로그램 도입, 해녀 복지 정책 강화 등으로 젊은 세대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다이버 출신 여성들이 신세대 해녀로 활동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해녀 문화는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해녀 체험 관광, 해녀 공연, 해녀 음식 문화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며 해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마무리: 바다를 품은 사람, 해녀의 미래
해녀는 단순한 잠수 기술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바다를 읽는 사람이고 생명과 생업의 경계에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온 이들입니다. 해녀 문화는 한국 사회가 가진 공동체성, 여성 주체성,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모두 담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그들을 박물관 속 전시물로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해녀의 삶을 존중하고, 그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다음 세대에게 전승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보내야 합니다.
바다는 기억합니다. 그 속에서 숨을 참으며 삶을 건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을 지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