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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무형문화재 해녀의 장비, 바다를 살아가는 기술의 결정체
    국가문화재 2025. 8. 8. 08:00

    제주의 바다를 깊고 조용히 내려다보면 그 속에서 유영하는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맨몸으로 바다 속을 누비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 이들의 물질은 단순한 잠수가 아닌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과 장비의 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흔히 해녀를 장비 없는 잠수부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해녀는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생업을 이어갑니다.
    해녀의 장비는 단순히 물질을 보조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해녀의 생명줄이자 전통과 지식이 스며든 문화적 산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해녀들이 사용하는 장비의 종류와 기능, 제작 방식, 전통적 가치, 그리고 현대적 변화까지 폭넓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녀와 부표

     

    해녀 장비의 역사적 배경

    과거 해녀는 초가집만큼이나 소박한 장비를 사용했습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해녀는 맨몸에 면옷만 걸치고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잠수를 위한 기본적인 장비조차 갖추지 못했으며 체온 유지를 위한 보호복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해녀는 오직 자신의 경험과 감각만으로 해산물을 채취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기술과 환경이 바뀌자 해녀 장비도 점차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일본에서 전해진 고무 소재의 잠수복이 보급되면서 해녀의 장비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장비의 변화는 단순히 작업 효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 해녀의 안전을 보호하고, 물질 활동의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성과의 갈등도 존재했고 일부 장비는 여전히 수작업과 공동체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해녀 장비의 기본 구성

     

    해녀가 사용하는 장비는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물안경 (안경, 놋안경 또는 유리안경이라고도 함)

    해녀의 눈은 바닷속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물안경입니다. 전통적으로는 구리테(놋쇠)로 테를 만들고 안에는 유리를 끼워 제작하였습니다. 유리는 일반 유리가 아닌 바닷물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두꺼운 강화유리를 사용합니다.
    오늘날에는 플라스틱이나 실리콘 소재의 현대식 스쿠버 고글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해녀는 여전히 전통 방식의 유리안경을 고수합니다. 전통 물안경은 시야는 좁지만 눈과 유리 사이의 간격이 짧아 맑은 날씨에 매우 유용합니다.

     

    오리발 (전통적으로는 사용하지 않음)

    전통 해녀는 오리발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물속에서의 균형과 방향 조절을 맨발 감각으로 이루는 전통적 기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오리발을 사용하는 해녀도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 해녀나 외지인 출신의 신입 해녀들은 체력 보완과 이동 거리 확대를 위해 오리발을 채택하기도 합니다. 단, 오리발을 쓰면 전통 기술인 뻐끔질(숨 참기)을 어렵게 만들어 일부 해녀는 오히려 사용을 꺼리기도 합니다.

     

    물소중이 (물복, 잠수복)

    해녀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장비 중 하나는 바로 물복입니다. 과거에는 흰색 면 옷 한 벌만 걸치고 물질에 나섰지만 현재는 대부분 고무로 된 검은색 잠수복을 입습니다.
    이 잠수복은 체온 유지, 부력 조절, 피부 보호 등을 위한 필수 장비로 자리 잡았고 보통 5mm 이상의 두께를 가집니다. 잠수복은 일반적으로 목 부분과 손목, 발목을 타이트하게 고정해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테왁 (부표)

    테왁은 해녀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녀가 수면 위에 떠 있을 때 몸을 잠시 쉬게 하거나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 두는 도구입니다. 테왁은 주로 속이 빈 호박처럼 생긴 둥근 부표 안에 그물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물망에는 소라, 전복, 미역 등이 담깁니다. 테왁은 물질 중 해녀의 위치를 외부에서 식별하는 용도도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테왁이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그 아래 해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빗창 (작살형 도구)

    빗창은 해녀가 바위 틈이나 좁은 공간에 있는 해산물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길쭉한 막대 끝에 날카로운 쇠갈고리나 톱니 모양이 달려 있어 바위에 달라붙은 전복이나 해삼을 떼어낼 수 있습니다.
    빗창은 지역에 따라 길이와 형태가 조금씩 다르며 해산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전복 전용 빗창은 갈고리 부분이 얇고 넓게 펼쳐져 있고, 해삼 전용은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을 가집니다.

     

    망사리 (그물 주머니)

    해녀는 수확한 해산물을 테왁에 직접 넣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망사리라 불리는 그물 주머니에 담아 보관합니다. 망사리는 허리에 고정하거나 테왁과 연결해 물속에서 들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망사리는 바닷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촘촘하지 않게 엮여 있으며 무게가 적당히 나가서 물속에서도 잘 흔들리지 않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해녀 장비의 제작과 전승

     

    해녀 장비는 과거 마을 장인들이 직접 만들거나 공동체 내부에서 상호 교환을 통해 조달하였습니다. 특히 물안경이나 빗창 같은 금속성 장비는 마을 대장장이가 전담하였고 테왁이나 망사리는 여성들끼리 공동 제작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장비가 공장에서 제작되지만 여전히 장비의 조립이나 수선은 해녀가 직접 하거나 마을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장비 하나하나에는 해녀의 손때가 묻어 있으며 어떤 장비는 세대를 거쳐 물려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물려주는 과정에서 해녀는 노하우와 기술까지 함께 전수 받습니다.

     

    현대 기술과 해녀 장비의 변화

     

    현대에 들어와 해녀 장비는 점차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물안경 대신 스쿠버용 마스크를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고 오리발이나 무게추(웨이트 벨트)를 사용하는 해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해녀 문화를 완전히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해녀들은 전통과 현대 기술을 조화롭게 융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장비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특히 안전장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GPS 장치나 무전기를 테왁에 장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령 해녀의 안전을 위한 중요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무리: 해녀 장비, 바다와의 대화를 위한 도구

     

    해녀가 사용하는 장비는 단순한 물질 보조 기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생존의 기술이며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녹아 있는 유산입니다.

    해녀의 장비는 해양 생태계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징하며 그 안에는 지혜와 존중, 그리고 끈질긴 생명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지 해녀의 장비를 구경거리가 아닌 살아 있는 전통 기술로 이해하고 그 보존과 전승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해녀 장비는 바다와 인간을 이어주는 끈이며 앞으로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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