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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무형문화재 해녀의 물질(水潛) 기술: 숨을 품은 전통의 기술유산
    국가문화재 2025. 8. 9. 08:00

    깊고 푸른 바다 아래에서 어떤 장비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몸 하나로 수중을 누비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주도의 해녀는 특별한 도구 없이도 바다 속 해산물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옵니다. 그들의 몸짓은 마치 하나의 정교한 예술 같고 동시에 생존을 위한 엄격한 기술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해녀는 단순한 잠수부가 아닙니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의 끊임없는 교감 속에서 물질(水潛)이라 불리는 독창적인 잠수 기술을 개발하고 전수해 왔습니다. 해녀의 물질 기술은 단순히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활동이 아닌 바다를 읽고 호흡을 조절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고도의 신체기술이자 전통 지식입니다.

    이 글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해녀 문화 중에서도 핵심 기술인 물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해녀의 물질 방법

     

     

    물질이란 무엇인가요? 해녀의 생존 기술

    물질은 해녀들이 수중에서 숨을 참은 채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련의 기술을 의미합니다.

    제주어로는 숨비질 또는 숨비소리라는 표현도 함께 쓰이며 해녀들의 물속 활동과 수면 위 호흡 과정을 모두 포함합니다. 해녀의 물질 기술은 단지 숨 참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압을 견디는 법, 조류에 대응하는 법, 수중 시야 확보, 수면 안전 확보, 그리고 바닷속 생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채취하는 능력까지 모두 포함하는 종합 기술입니다.

     

    해녀의 물질은 세 가지 주요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입수 전 호흡 조절 (숨고르기)

    수중 잠수 및 채취 활동 (물질)

    수면 상승 및 회복 호흡 (숨비질)

     

    각 단계는 수십 년의 경험과 연습이 없이는 정확하게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숨비질이라 불리는 수면 위 회복 호흡은 해녀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생명 유지의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물질 기술의 핵심: 호흡과 수압에 대한 적응력

     

    해녀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압과 저온에 지속적으로 노출됩니다. 보통 해녀는 한 번 물질할 때 5~10미터 정도까지 잠수하고 경우에 따라 15미터 이상의 깊이까지 내려갑니다. 이 정도 수심에서는 물의 압력이 체내 공기를 압축하게 되고 중이염이나 폐에 부담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녀는 체내의 압력을 조절하는 이퀄라이징(압력 평형)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이들은 코를 막고 코 안의 공기를 귀 쪽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귀의 통증을 줄이고 수압에 적응하는 기술을 체득합니다.

    또한 해녀는 특유의 호흡 조절을 통해 폐에 가능한 많은 공기를 저장하고 이산화탄소가 혈액에 축적되는 시간을 견뎌냅니다. 일반인이 30초~1분 이상 숨을 참기 어렵지만 숙련된 해녀는 평균 1분 30초에서 길게는 2분 30초 이상 숨을 참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수천 번의 반복된 훈련과 실전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질의 기술적 분류: 상군, 중군, 하군

    해녀의 물질 능력은 체력, 경험, 수심 적응력 등에 따라 세 가지 계급으로 나뉩니다.

     

    상군 해녀: 10m 이상 깊이까지 물질할 수 있으며 가장 숙련된 기술을 가진 고참 해녀입니다. 대부분 20년 이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수확량과 채취 기술 모두 뛰어납니다.

     

    중군 해녀: 보통 5~10m 사이의 수심에서 물질하며 기술이 중간 정도인 해녀를 말합니다.

     

    하군 해녀: 수심 5m 이하의 얕은 바다에서 활동하며 초보 해녀나 고령의 해녀들이 해당됩니다.

     

    이 계급은 단순한 직책이 아니라 실제 물질 능력과 위험 감수 수준을 구분하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상군 해녀는 리더 역할을 맡고 신입 해녀를 교육하며 물질 기술의 전승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질의 절차와 동작: 하나하나가 정밀한 기술

    해녀의 물질 과정은 정교한 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각 단계마다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숨고르기(준비 호흡)

    해녀는 입수 전 몇 차례 깊은 복식호흡을 반복하며 폐에 산소를 최대한 축적합니다. 이 호흡은 단순한 들숨과 날숨이 아니라 가슴과 복부를 동시에 이용해 산소를 효율적으로 채우는 방식입니다.

     

    입수 및 하강

    숨을 들이마신 후 해녀는 수면에서 곧장 수직 하강합니다. 해녀는 수압을 줄이기 위해 몸을 바르게 펴고 팔과 다리를 최소한으로 움직입니다. 하강 속도는 평균 1~2m/s이며, 하강 도중 수압에 따른 이퀄라이징을 여러 번 실시합니다.

     

    수중 채취 활동

    바닷속에서 해녀는 전복, 해삼, 소라 등의 위치를 눈으로 탐색한 후 도구(빗창 등)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떼어냅니다. 손끝 감각이 매우 중요하며 초보 해녀는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실수를 범합니다.

     

    수면 상승과 숨비질

    수확 후 해녀는 테왁 쪽으로 수직 상승하며 수면에 도달한 뒤 급격히 호흡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특유의 호흡 소리가 바로 숨비소리입니다. 숨비질은 체내 축적된 이산화탄소를 빠르게 배출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과정으로 생존을 위한 필수 호흡법입니다.

     

     

    물질 기술의 공동체 전승 방식

    해녀의 물질 기술은 책이나 영상으로만 전수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직접 보고 따라하면서 배우는 구술문화를 통해 전승됩니다. 대부분의 신입 해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나 이모, 동네 해녀들의 물질을 따라하며 기술을 익힙니다.

    초보 해녀는 하군 해녀로부터 얕은 수심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깊은 곳으로 훈련 범위를 넓힙니다.

    전통적으로는 물질 입문식이나 물질 허락 의식 같은 공동체 전통을 통해 정식 해녀로 인정받습니다. 이러한 훈련 과정은 최소 수년이 걸리며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 관리가 필요합니다.

     

     

    물질 기술과 생태적 지속 가능성

    해녀는 무분별하게 해산물을 채취하지 않습니다.

    물질 기술에는 자연과의 공존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해녀는 알을 밴 해산물이나 어린 개체는 수확하지 않으며, 해삼이나 전복의 번식 시기에는 물질을 자제합니다.
    이러한 지속 가능한 어업 방식은 해녀 공동체가 자체적으로 규정한 어장 질서에 따라 유지되, 물질 기술이 단순한 수확 수단이 아닌 생태 보존 기술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대 기술과 해녀 물질의 조화

    최근에는 물질 기술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맨몸으로만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해녀는 체온 유지 장치나 GPS, 무전기 등의 보조기기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 기술인 물속 잠수와 호흡법, 채취 동작 등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해녀학교나 문화센터에서는 물질 기술을 전통문화 체험으로 교육하며 젊은 세대에게 그 가치를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해녀라는 직업과 문화의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중요한 시도입니다.

     

    마무리: 숨으로 이어가는 유산, 해녀의 물질 기술

     

    해녀의 물질 기술은 단순한 노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 호흡하며 길러낸 생존의 지혜이며 한국이 간직한 독창적인 수중 기술문화입니다.

    해녀의 물질은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생태 보존과 여성 공동체 문화, 그리고 전통지식의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기술을 단지 과거의 유산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해녀의 물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기술이며 다음 세대가 그 정신과 기술을 배우고 이어가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숨을 참아가며 바다 속 삶을 이어가는 해녀들, 그들의 물질에는 수천 번의 파도보다 더 깊은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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