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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벨 프린터기로 찍어내던 이름표의 유행, 그 손맛의 추억
    문방구와 추억의 물건 2025. 10. 10. 08:15

    학교가 새 학기를 맞을 때마다 가장 먼저 하던 일은 이름표 붙이기였다. 책가방 안쪽, 공책 위, 필통 표면까지 나만의 이름을 새겨 넣던 그 시절.
    볼펜으로 쓰는 대신 라벨 프린터기로 이름을 뽑아 붙이던 그 유행은, 단순히 실용을 넘어 감성의 표현이었다. 당시 라벨 프린터기는 문방구의 핫템이었다. 손으로 눌러 문자를 하나씩 새기고, 딸깍딸깍 돌아가는 휠의 소리와 함께 얇은 비닐 테이프 위에 하얀 글씨가 찍혀 나왔다. 그걸 가위로 잘라 책이나 필통에 붙이는 순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물건이 완성되었다.

     

     

    라벨 프린터 이름표

     

     

    라벨 프린터기의 시작 — 손끝에서 탄생한 DIY 문화

    라벨 프린터기의 유행은 단순한 편리함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손으로 무언가를 찍어내고 만든다는 행위가 주는 성취감, 그리고 내 이름을 새긴다는 주체적인 감정이 함께였다.

    초창기 라벨 프린터기는 기계식이었다. 둥근 다이얼을 돌려 알파벳을 선택하고, 손잡이를 꾹 눌러 글자를 찍어내면 플라스틱 테이프 위에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졌다. 그 손맛이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디지털 이전의 시대, 라벨 프린터는 손의 감각으로 정체성을 기록하는 도구였다. 그 덕분에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작은 공예품처럼 느껴졌다.

     

     

    이름표의 의미 — 나를 드러내는 가장 작은 방식

    아이들에게 이름표는 단순한 식별표가 아니었다. 이건 내 거야라는 자기표현의 시작이자, 세상에 자신을 보여주는 첫 번째 방식이었다. 공책 표지에 붙은 네임라벨은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졌고, 필통이나 도시락통에 붙은 이름표는 이건 내 개성의 일부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심지어 친구들끼리 서로의 이름 라벨을 찍어주며 작은 우정의 의식처럼 즐기기도 했다. 서로의 이름을 라벨로 붙여주는 건 그만큼 친밀함의 표현이었다.

     

     

    문방구의 작은 혁명 — 컬러, 글씨체, 감성의 확장

    시간이 지나면서 라벨 프린터기는 진화했다.
    초기엔 단색 테이프에 흰 글씨가 기본이었지만, 이후에는 다양한 색상과 글씨체, 그리고 이모티콘 같은 심볼이 추가되었다.

    분홍색 테이프에 하트 모양 아이콘, 검정 바탕에 은색 글씨 등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게 라벨을 꾸몄다. 어쩌면 이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커스터마이징의 즐거움, 즉 내 물건을 나답게 만드는 문화가 시작된 것은.

     

     

    디지털 이전의 손맛, 느림의 미학

    오늘날엔 스티커 라벨을 앱으로 디자인하고 한 번의 클릭으로 인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라벨 프린터는 느림의 미학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선택하고 눌러야 했고, 오타라도 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했다.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정성을 담아냈다.
    그 시절 아이들의 책가방에는 정성스럽게 눌러 찍은 나만의 이름표가 빛났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내와 집중의 미학을 배웠고,
    무엇보다 손으로 만든 결과물이 주는 따뜻함을 느꼈다.

     

     

    유행의 귀환 — 라벨 프린터의 레트로 열풍

    놀랍게도 지금 라벨 프린터는 다시 돌아오고 있다. SNS에서 레트로라벨러, 감성문구 해시태그로 과거 감성을 재현한 기계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 나오는 라벨 프린터는 블루투스 연결로 글씨를 출력하지만, 디자인은 과거의 기계식 휠을 그대로 재현했다. 손으로 누르던 그 딸깍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젊은 세대들도 구매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손의 감촉과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한다.
    라벨 프린터는 단지 이름을 새기는 도구가 아니라, 기억을 출력하는 기계가 된 셈이다.

     

     

    이름표로 이어진 추억의 조각들

    라벨 프린터로 찍어낸 이름표는 시간이 지나면서 교과서의 구석, 앨범의 표지, 수첩의 한 모서리에 남아 그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릴 적 서툰 손글씨 대신 찍었던 이름표는 이제는 우리의 타임캡슐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때의 라벨에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그 시절의 열정과 감정, 그리고 시간이 새겨져 있다.

     

     

    마무리 — 나를 새기던 시대의 감성

    이름을 새긴다는 건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다.
    라벨 프린터로 이름을 찍던 그 시절, 우리는 무심코 놀이처럼 자신을 기록하고 있었다. 디지털 세상이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그때의 라벨 프린터는 여전히 마음 속 어딘가를 간질인다. 내 이름을 직접 새긴다는 그 작은 행동이 얼마나 따뜻하고 인간적인 행위였는지를 이제야 깨닫게 된다.

    지금 책상 서랍 어딘가에 오래된 라벨 테이프가 있다면 그걸 한 번 꺼내 손으로 만져보자.
    그 질감이, 그 글자가, 아마 당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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