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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레파스 향기에 묻어난 유치원 시절의 기억
    문방구와 추억의 물건 2025. 10. 11. 08:30

    새하얀 도화지 위에 처음 색을 입히던 날, 손가락 끝에 묻은 크레파스의 냄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건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내 유년 시절의 온도와 감정을 품은 시간의 냄새였다. 유치원 교실 한쪽 서랍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24색 크레파스. 손에 쥐면 살짝 미끄럽고, 표면에 묻은 하얀 분말이 손가락을 감쌌다. 뚜껑을 열면 밀랍과 왁스의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고, 그 순간 세상이 한층 따뜻해지는 듯했다.

     

     

    크레파스 향기의 기억

     

     

    내 어린 시절의 시작은 한 자루의 크레파스였다

    어릴 적 우리는 말을 하기 전에 그림을 그렸다. 이건 엄마야, 이건 강아지야. 삐뚤빼뚤한 선과 덩어리 같은 사람의 모습 속에는
    아이의 상상력과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손가락에 묻던 색, 팔꿈치에 닿던 도화지의 거친 질감,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던 그 달콤한 냄새. 그건 단순한 미술의 순간이 아니라, 감각으로 세상을 배우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지금도 크레파스 상자를 열면 순간적으로 유치원 교실의 풍경이 떠오른다. 작은 의자, 낮은 탁자, 색종이, 풀,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장면이 하나의 향기로 다시 되살아난다.

     

     

    색을 통해 세상을 배우던 시간

    빨강은 사랑, 노랑은 햇살, 초록은 산, 파랑은 바다. 우리는 색으로 세상을 이해했다.
    선생님이 하늘은 무슨 색일까? 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경쟁하듯 푸른색을 꺼내 들었고, 때로는 보라색 하늘을 칠하며 웃곤 했다.

    그때는 정답이 없었다.

    모든 색이 옳았고, 모든 그림이 예뻤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 아이들은 상상이라는 날개를 폈다.

    크레파스 한 줄, 한 줄은 단지 색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였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색이 되어 도화지 위에 흩뿌려졌다.

     

     

    손끝의 기억, 감촉의 기억

    크레파스를 손에 쥐면 살짝 부서지는 촉감이 느껴졌다. 너무 세게 누르면 똑 부러지지만, 살짝 힘을 주면 매끄럽게 색이 퍼졌다.

    그 감촉은 아이들에게 조절과 섬세함을 가르쳐주었다. 손끝의 힘, 터치의 온도, 색이 번지는 속도. 모든 게 손과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요즘은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고, 디지털 펜으로 색을 입힌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손끝으로 느끼던 크레파스의 감각은 대체되지 않는다. 그건 단순한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감정을 만지는 예술이었다.

     

     

    냄새로 기억나는 유년의 조각

    후각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감각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크레파스의 향을 맡으면 순간적으로 시간의 문이 열린다.

    유치원 친구들과 웃던 장면, 그림 그리며 몰입하던 순간, 도화지를 바닥에 펼쳐 놓고 양손으로 색을 칠하던 어린 나. 그 냄새에는 순수함, 집중, 그리고 행복이 스며 있다.
    세상은 단순했고, 색 하나로도 마음이 가득 찼던 시절이었다.

     

     

    문방구에서의 설렘, 새 크레파스의 상징

    새 학기가 다가오면 문방구에 들러 새 크레파스를 고르는 게 큰일이었다. 어떤 브랜드를 살지, 몇 색짜리를 고를지 고민하던 그 순간의 설렘. 비닐 포장을 뜯고 첫 냄새를 맡는 찰나의 순간이 아이들에겐 새 출발의 신호였다. 그때의 크레파스는 단순한 미술 도구가 아니라, 꿈의 시작점이었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 그건 아이들에게 세상을 그리는 첫 번째 경험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남는 건 향기다

    지금 어른이 되어 바쁜 일상 속을 살아가지만, 가끔 미술용품 가게에서 크레파스 향이 스칠 때면 마음이 이상하게 포근해진다.

    그건 단순히 옛날 물건의 냄새가 아니다. 그건 순수했던 나의 시간의 냄새다. 걱정도, 비교도, 경쟁도 없던 그 시절의 공기.
    그 안에서 나는 세상을 처음 배우고, 표현이라는 기쁨을 처음 만났다.

     

     

    마무리 — 향기로 남은 유치원의 시간

    크레파스 향은 나에게 유년 시절의 가장 따뜻한 기억을 품은 타임캡슐이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마음속에 작은 불빛이 켜진다.

    괜찮아, 그때처럼 다시 시작하면 돼. 그 한 줄의 위로가 크레파스 향에 담겨 있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건, 결국 감정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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